“마음이 무거울 땐 레위기를 읽어봐. 우리 옛 조상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갔는지 알 수 있으니까.”
작은 교회 구석 도서관에서, 한 신학생이 속삭인다. 나는 서가 한켠의 검은 성경을 꺼내 천천히 넘긴다. ‘레위기 4장 – 속죄제에 대하여’. 어린 양이 번제단 위에 누워 있다––피, 불, 제사장, 향기로운 냄새 그리고 속죄.
나는 상상 속에서 한 소년이 되어, 이스라엘 진영을 누빈다. 아버지가 손을 잡고 번제단 앞으로 데려간다. 떨리는 손으로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내가 이 양 때문이구나…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저 양이 죽는구나.” 번뜩이는 칼날, 뜨거운 불꽃, 피의 희생––그리고 죄를 덮는 하나님.
수천 년이 지난 오늘, 나는 현대의 도시 한복판을 걷는다. 커피숍 조명 아래, 노트북에 ‘modern atonement’ 키워드를 치면 수많은 신학 글이 쏟아진다.
누군가 묻는다. “지금도 속죄가 필요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약 제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죠?”
나는 다시금 떠오른다––골고다 언덕,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 그 위에 십자가.
이제는 양 대신 한 사람이, 피를 흘린다. 그 분의 이름은 예수.
레위기의 옛 제사법은 그림자였고, 십자가는 실상이다.
그때는 짐승의 피로 잠시 덮었다면,
지금은 예수님의 피로 완전히 씻긴다.
예전 소년이 제단 앞에서 떨었듯,
오늘 나는 십자가 앞에 선다.
내 죄 위에 손을 얹고, “저 때문이군요,” 고백한다.
그리고 듣는다–– “다 이루었다.”
속죄는 죄를 덮는 제사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오늘날 속죄란,
내 죄를 알아차리고 회개하는 것,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용기를 얻는 것이다.
나는 블로그에 이렇게 쓴다.
> “레위기, 그리고 오늘. 고대의 번제단과 현대의 골고다.
두 세계가 ‘속죄’로 연결된다.
과거엔 양 한 마리가 필요했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속죄란, 내가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그 사랑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용기다.
그래서 제단이 있었고, 그래서 십자가가 있었다.”
밖에서 낮은 종소리가 울린다.
나는 블로그 초안을 저장하고, 그 의미를 오래도록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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