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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솔루션 웹툰

아론과 황금송아지 기다림은 어려워

by 김기준 2025. 8. 2.

🐄 아론과 황금송아지 — “기다림의 불안이 만든 우상”
“나는 언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다 스스로 해답을 만들었는가?”
그 물음을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사람은 아론이었다.

성경이야기시리즈 17:금송아지를 만든 아론
저자
허순이
출판
한국문서선교회
출판일
1992.01.01


1. 기다림은 생각보다 무겁다
광야의 낮은 덥고, 밤은 추웠다.
모세가 신의 산으로 올라간 지도 한참이 지났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귀로는 들리지 않는 하나님. 그 하나님과 대면하러 올라간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아론, 넌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을 더 믿을 수 있겠나? 우리를 이끌 새로운 신이 필요하다!”

말은 요구였지만, 눈빛은 명령이었다.

아론은 그들을 바라본다.
광야에서는 시간도 길어지고, 마음의 여유도 말라버린다.
그들의 눈 속엔 믿음이 아니었다.
불안, 조급함, 두려움이 소금처럼 뿌려져 있었다.

그 불안이 누군가의 입을 열었다.
누군가의 손을 움직였다.
누군가의 믿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아론이었다.

2. 타협의 시작
“너희의 금귀걸이를 가져오라.”

아론은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불안한 백성을 잠재우기 위한 타협.
어쩌면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계산.
‘모세만 돌아오면, 다시 다 원위치 될 수 있어’라는 자기합리화.

하지만 신앙에는 ‘지금만’이 없다.
잠깐의 타협은 영원의 결과를 낳는다.

그가 녹여버린 것은 단지 금이 아니라
백성의 믿음과,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불이 가열되고, 금이 부드러워지자
그는 그 재료를 손에 쥐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송아지 형상 하나가 만들어졌다.

아론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백성이 그것을 보며 환호하고, 절하며, 춤추는 모습.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너희 신이다!”

그 순간, 한 공동체의 신앙은 무너졌다.
기다림의 끝에서 그들이 마주한 것은
하나님의 얼굴이 아닌,
**자신이 만든 ‘해답’**이었다.

3. 우리의 송아지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언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다 나만의 신을 만들었는가?”

내 계획이 자꾸 틀어질 때.
기도한 일이 응답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
우리는 그 빈 공간을 못 견딘다.

그래서 엑셀을 펴고, 스케줄을 짜고,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일하시겠지’하며
스스로 해답을 낸다. 그리고,
**기도를 빙자한 ‘확인 요청’**만 반복한다.

결론은 이미 내렸고,
하나님의 뜻은 그 결정을 정당화하는 검토 자료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황금송아지다.

4. 조급함의 신앙은 왜곡된 신앙이다
아론은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우상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백성의 불안을 달래고 싶은 마음 하나였겠지만,
그 마음이 그를 가장 큰 실수의 자리로 데려갔다.

조급함은 신앙을 성급하게 만든다.
성급한 신앙은 기도 앞에서 침묵 대신 행동하게 한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처럼 포장해버린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몸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
그분은 결과물보다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동기를 보신다.

5. 다시, 기다림이라는 신앙
‘기다리기만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우리 중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기다림'을 알려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지연은 무능이 아니라 교육이다.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정리의 시간이다.

모세는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었고,
아론은 산 아래에서 백성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둘 사이 어딘가에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릴 것인가,
내 불안에 굴복할 것인가.

🙏 묵상의 마무리: 나의 작은 송아지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무엇을 하나님보다 앞세우고 있는가?’

커리어? 사람? 돈?
감정? 성공? 능력? 안정감?

그것이 하나님 없이 결정되고 유지된다면,
그것은 이미 작은 송아지가 되어 당신을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결론
하나님의 음성은 때때로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림은 나를 더 깊게 만든다.

당신이 아직도 광야에 있다면,
그곳은 끝이 아니라 ‘다듬어지는 장소’일 뿐이다.

기다림 안에 머무르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하나님을 만난다.

🌀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있지 않습니까?